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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사랑

이 준수 집사. "감사하며 살아요!"

 

장애인의 날이 있는 4월 비록 단 하루의 장애인의 날이긴 하지만 우리는 이런 날을 계기로 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좋은 인식을 갖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전신이 마비되어 휠체어와 지내온 만 19년이란 세월이 그 얼마나 힘들고 험난한 고통의 세월이었던가...!

힘든 고통의 세월이었지만 주님을 영접했기에 그 험난한 여정도 꿋꿋이 잘 지내온 것 같다. 10년이면

강산도 두번 변하는데, 휠체어에 앉아서 20여년이 됐으니 내 모습도 두번이나 변했다.

 

20여년을 지내오면서 행복한 시간보다는 불행한 시간이 많았지만 불행한 시간이 있었기에 더 강해진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Roosevelt Island'하면 참 의미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첫째는 나에게 제 2의 삶을 준 곳이기도 하다. Roosevelt Island 는 행정구역이 뉴욕시 맨하탄에 속해 있고 Queens와 Manhattan 사이에 오이처럼 생긴 직경 2마일도 안되는 아주 작고 아담한 섬이다. 여기에 재활병원이 두 곳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이 Goldwater Memorial Hospital이다.

 

나는 이곳에서 1991년에 재활 훈련을 받기위해 입원하게 되었다. 이 때만 해도 미국생활에 익숙치 않아 미국 사람들이 밥먹듯이 말하는 굿모닝, 하우아유도 말하기 싫어 방에 가는 것도 꺼리던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촌스럽던 그런 시절이었는데... 병원생활 2개월째...몸도 마음도 힘들던 중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이틀 동안 기침을 했더니 폐렴에 걸리고 말았다.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져 산소 호흡기를 달고 2주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하루에도 몇 명씩 목숨을 잃고 나가는 그곳은 지옥 그 자체였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다시 한번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그리고 나는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다. '이곳에서 나가면 현재 나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정말 열심히 살아야 겠다.'라고 ... 지금 생각을 하니 병원 신고식을 목숨 걸고 했던 것 같다.

 

                                           척추 장애인...? 척추가 마비가 되면 걷지못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소대변을 스스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이해가 잘 안되겠지만, 쉽게 얘기하자면 소변은 고무호수로, 대변은 약으로 해결                                            한다는 것이다. 또 앉아서 생활을 해야 하는 척추 장애인은 욕창이란 무서운 질병과 싸워야 한다.

                                           나는 경추 5번 6번이 마비되어 병원생활을 하면서 방광염을 달고 다녔다. 방광염에 걸려본 사람은

                                           그 증상이 어떤지 대충 알겠지만 전신이 마비되어 내 스스로 소변을 보지 못하는 나로써는 방광염에                                              감염되면 의사에게 주사나 약을 처방받게 된다. 주사를 맞으면 하루 4번, 몸에 감각이 있든 없든

                                           아무 곳에나 투약하고 나간다.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하지만 손도 안 움직이는 나로써는 엄청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병원생활을 하던 어느 날 나는 다시 방광염에 걸렸다. 열아 나고 입안이 헐고, 다른 날 방광염에 걸렸을 때보다 증상이 더 심했다. 음식도 먹지 못하고 항생제만 먹고 지내던 중 임선숙 사모님이 제가 아파서 음식도 못 먹고 지낸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시고 내 병실을 방문하시며 짬뽕을 들고 오셨다. 여느 사람들 같으면 언제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그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 짬뽕 한 그릇을 비우고 기운을 차려 방광염이 낫았지만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신 임선숙 사모님께 감사드리며 지금도 병원, 양로원 사역을 하시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시는 임 사모님!, 이런 사역자가 있기에 장애인의 날을 결코 외롭지만은 않은 것이다.

 

                                           정말 뉴욕은 다양한 민족이 거주한다. 전세계인들이 뉴욕이란 한틀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산다는 걸

                                           느끼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몸이 불편한 나는 재활병원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보니 여러 민족                                            들과 접할 경험이 많았다. 재활병원에 가면 장애가 서로 다르고 국적이 서로 다른 사람들과 쉽게 접할                                            수 있다.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며 국적이 다른 곳에서 국제장애인 선교회가 10년전 Goldwater

                                           Hospital 병원사역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를 회고해 본다. 한인성도 2명으로 시작한 병원교회가

                                           이제는 매 주일 한인 그리고 외국인을 포함해 20여명이 넘는 International Church로 이중언어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발전했다. 정말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한인성도보다 외국인                                              성도가 더 많다. 외국인 성도들은 미국교회에서 드리는 주일예배보다 한국인들과 같이 드리는

                                           주일예배에 더 은혜를 받는다고 얘기한다. 이것은 그동안 변함없는 국제장애인 선교회의 헌신적인

                                           사랑과 우리 한민족만이 갖고 있는 끈끈한 정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이곳 Goldwater Hospital은 장기 그리고 단기 환자가 함께 생활하는 곳이기도 하다. City Hospital에서 어느정도 치료가 끝나고 재활이 필요한 환자는 이곳으로 보내지게 되는데, 이런 경우 말고도 집에서 생활하기가 어렵고 힘든 환자들이 입원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몸이 불편해 특별한 곳에서의 삶이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하는 일은 비장애인과 다른 것이 없다. 또한 이곳에서의 삶은 누가 잘나고 누가 못나고 할 것없이 똑같은 환자다. 환자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그들의 취미라고 할까 그들만의 사는 방식이라고 할까, 어쨋든 다양하다. 복도에 서서 돈을 요구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오고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환자들... 또 침대에 누워 무언가를 파는 환자, 게임을 하는 환자, 도서실에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환자, 외출증을 가지고 외출하는 환자, 예배실에서 기도하는 환자, 침대에서 또는 휴게실에서 소일하는 환자 등등... 비록 건물 안에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이지만 그래도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병원 생활한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날, 그때가 점심식사 시간이다. 밥을 먹고 있는데 콜 블루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내가 생활하는 병동에 위급환자가 있다는 안내방송이 있었다. 그리고 몇 분후 많은 사람들이 내 방 바로 건너편 병실로 모여들었다. 지켜본 상황으로는 위급한 상태에 놓인 환자를 살리려고 애쓰는데 결국 살리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하얀 시트에 싸여 환자차트가 그 위에 놓인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환자의 죽음 앞에 나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비록 육신은 마비되어 하루하루 살고 있지만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눈문을 흘렸다. 이 땅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그 때를 회상해 본다.

 

자기를 위해 또는 가족을 위해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우리의 삶이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우리는 또한 감사를 아끼지 말아야겠다.

 

나는 장애를 입은 후 나 자신에 대한 치료와 재활에만 열심을 다해 살아왔다. 밥도 혼자 떠먹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그 당시 밥 떠먹는 것도 나에게는 재활치료이면서 그것이 곧

나의 일이기도 했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 음식을 떠먹을 때마다 숟가락에 있는 음식의 반은 내 옷에

떨어지고 나머지 반은 입안에 들어가 음식을 씹는다. 음식을 씹으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지만 그 눈물의

반은 내 장애에 대한 슬픔이면서 또 눈물의 반은 혼자서 음식 먹는 일을 해냈다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일상생활에서 늘 하는 것이지만 건강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걸 느꼈고 또 자기

스스로 음식 떠 먹는 일을 해 냈다는 것에 감사 또 감사했다. 거북이처럼 휠체어를 밀고 다녀도 그래도

나는 행복한 장애인이었다.

 

한 병동에 38명의 환자가 생활을 하는데 그 중 반은 늘 침대에서 하루를 보낸다. 정신이 깨끗하지 못한

환자가 그냥 침대에 있는가 하면 욕창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 하루도 아니고

오랜 기간 그냥 침대에 있는가 하면 욕창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 하루도 아니고

오랜 기간 침대에서 보내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내가 병동 복도를 휠체어로 지날 때면 침대에 있는

친구들이 부른다. Lee라고 ...그러면 친구들이 부르는 곳으로 간다.

 

그 친구들이 나를 부른 이유인 즉 커피와 도너스, 쿠키를 사다 달라는 것이다. 나를 부른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그들에게 내가 무엇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비록 일반인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장애를 가진 나에게는 작은 일하나라도 희망을 주고 삶의 행복을 주는 정말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너무나 감사할 일이 많다. 누가 불행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장애가 있어서 고통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삶의 만족을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살면서 그 동안 얼마나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감사했는지...

 

재활병원에서 생활하면서 남미 친구 하나를 만났다. 후레디 산체스라는 이 친구는 전신이 마비되어 누구의 도움없이는 하루도 살 수없는 그런 친구였다. 거기다 오래 전부터 당뇨병을 앓고 지내는 친구였다. 홀어머니와 시집간 두 여동생, 거기에 한 여동생의 딸은 말도 못하고 생각도 못하는 중증장애아였다. 늘 휠체어에 앉아서 엄마와 같이 병원에 산체스를 방문하러 온다. 그들의 삶도 힘들었을텐데 그대로 늘 밝았던 그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나 가진 재물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갖지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그렇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힘이 있었다. 물질도, 건강도, 하물며 체류신분도 불법인 그에게 힘이 된 건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지금의 그들의 삶에 만족하며 감사했기에 모습이 밝게 보였을 것이다. 내 삶이 어려워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기에 또 감사할 수 있는 제목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4월은 장애인의 날...

우리 모두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르는 생각을 떠나 편견없이 살아 갈수 있다면 더블어 사는 세상 더 밝은 세상이 올 것을 의심치 않는다.

 

※ 이준수 집사는 모든 재활 과정을 마치고 병원을 떠나 현재 Roosevelt Island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가 오랜 투병과 재활 기간을 훌륭히 이겨내고 현재 자신의 힘으로 꿋꿋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많은 재활 병동 환자들에게 큰 귀감과 희망이 되고 있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힘겨운 재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많은 조언도 해 주고 있다.

이준수 집사 E-mail 주소는 rijsl@yahoo.co.kr 이다